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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6 아직 새기지 않은, MB의 묘지명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용산 참사와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나는 취임 1년을 맞는 이명박 대통령도 다산 선생처럼 자찬 묘지명을 쓰면서 삶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남은 4년이 지금 같다면 그건 대통령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불행한 일 아닌가. 아직 새기지 않은 묘지명은 수정될 수 있다.

유미(有美) 대한민국 대통령 경주이공 명박지묘

공의 휘는 명박이요, 본은 경주다. 공은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포항에 돌아와 자랐다. 공이 동지상고를 마친 뒤 고려대를 독학으로 졸업하고, 현대건설 입사 12년 만에 사장에 오르니 월급쟁이들의 신화가 되었다. 1992년 왕회장이 대선에 나설 때 공은 그를 떠나 민자당에 입당하니 공이 앞날을 내다봄이 남달랐더라. 공이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큰 뜻을 품으매, 비비케이(BBK) 동영상이 앞길을 막았으나 공이 오뚝이같이 살아남자 무조건 부인하는 아름다운 기풍이 널리 퍼졌다.

공이 역대 최다 표차로 대통령이 되어 영어몰입교육에 애쓰시니 그 뒤로 어린 백성이 미국에 가 오렌지를 못 사먹는 일이 없었다. 공이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백성들에게 먹이려 하니 미국인들조차 공의 어진 마음에 감읍하였다. 이때 친북좌파들이 어린 학생을 선동해 촛불 민란을 일으켜 나라가 어지러웠으나, 공이 의연히 버티시니 촛불이 다 타 제풀에 꺼지더라. 이에 공이 분연히 일어나 유모차 무리 등을 엄히 다스리시니 나라의 법이 바로 섰더라. 공이 <한국방송>(KBS)과 <와이티엔>(YTN)을 접수하고 나대는 전교조 교사들을 한칼에 베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밤 부엉이 한 마리를 사냥하시니 세상의 언론이 바로 섰더라. 공이 잘못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으려 하매 역사학자와 출판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공이 직접 그 출판사는 정부가 두렵지 않은가 준엄하게 꾸짖어 교과서를 고치매, 뉴라이트들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통령이 건국의 원훈들에게서 친일파란 오명을 벗겼다고 기뻐 날뛰었다.

공이 100만이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로 외쳐도 4900만은 집에 있다고 굳게 믿으시니 그 버티기 솜씨에 하늘마저 놀랐더라. 공은 이 모든 시련을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 여겨 하느님 말씀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듣지 않았다. 공이 한번 귀를 닫으시니 참모들은 입을 닫았다. 상하가 일치단결함이 일찍이 없던 아름다운 모습이나 공의 고독은 깊어만 갔더라. 고독한 공이 마음만 바빠 속도전을 지시하시니 그 빠르기가 1950년대 김일성의 평양속도를 능가하였다. 이때 김석기가 앞서 뛰쳐나가다가 그릇 몇 개를 깨뜨려 비난이 일었으나, 공이 열심히 하다 실수한 자를 내치면 안 된다고 끝내 감싸주시니 공직사회가 공의 믿음과 관용에 깊이 감읍하였다.

공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숭례문이 타고 용산이 타고 사람들 속이 타고 화왕산마저 타 버렸다. 공이 불기운을 물로 다스리려 대운하를 파대시니 비로소 오행과 풍수의 기운이 맞아 국태민안이 이루어졌다. 공이 북의 김정일 집단을 상대하지 않고 내치시니 반헌법적인 6·15 선언이 이로부터 휴지가 되었다. 이북 아이들이 서해에서 도발하매 이를 응징하시니 이순신 죽고 최대의 승리였더라. 공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친북세력을 척결하시니 세상이 평온해졌더라. 공이 제2롯데월드를 높이 세우니 용산의 무리들이 제아무리 높은 망루에 올라도 따라올 수 없었다. 공이 전봇대 두 개 뽑은 것으로 임기를 마친 후 ○○○○년에 졸하셨다. 세인들이 노무현 시절은 대통령 혼자 시끄러웠으나 공의 재위시에는 천하가 다 시끄러웠다며 공의 힘이 세상 구석구석에 퍼졌음을 오래오래 기렸더라.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 출처 : 한겨레 신문


Posted by 썩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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