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모두 모여라!!

“인생은 B(Birth)로 시작해서 D(Death)로 끝난다.” 철학자 사르트르가 남긴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둘 사이 선택(Choice)에 의해서 구체화된다. 우철아, 몇 해 전 내린 그때의 ‘선택’이 졸업을 앞둔 너에게 어떤 의미로 남겨져 있는지 궁금하다.

너는 꽤 괜찮은 후배였다. 너는 성실하며 부지런했고 약속도 잘 지켰다. 네가 2학년이었을 때 대학생활에서 중요한 선택이 남겨져 있었다. ‘봉사활동’ 소모임과 ‘사회과학’ 소모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얼핏 보면 둘 다 이타적인 행위를 하고 다 같이 모여 진하게 소주잔을 나누는 모습이다. 그중 봉사활동은 당장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쉬웠고 꾸준히만 하면 이력서에도 괜찮게 한 줄 채울 수 있었다. 여기에 대기업 티브이 광고 속 날개를 달고 빨래를 밟는 여배우의 모습은 봉사활동에 ‘판타지’를 부여했다. 그에 비해 사회과학 소모임은 늘 집회에 나가 소음을 만드는 주범이었고, 때론 퇴근하는 직장인을 본의 아니게 막았다. 그런 ‘대책 없음’이 대학생들에게는 이질감만 낳았다.

봉사활동과 사회운동 사이

나는 때론 사람을 만날 때 정치적인 의도(집회를 가자고 조르는)를 품기도 했고, 빈약한 논리에 넘치는 감정을 보태어 누군가를 설복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려는 진짜 모습은 언론이 쏟아내는 뉴스에서 진짜를 가려내고 그 이면에 숨겨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단순히 누군가를 위해 연탄을 나르기보다는, 왜 그들이 몸에 해로운 연탄을 쓸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내가 그들의 연탄을 나르지 않아도, 빨래를 밟지 않아도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더 견고한 사회구조가 그들의 생활을 도울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어른들은 공무원시험에 집착하는 우리 세대를 보고 한숨짓는다. 그러나 그 시선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을 모자라고 우기는 <어린 왕자> 속 그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 세대는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이타성과 적극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개인은 분투(봉사활동)하나, 그것을 조직화하고 무리를 짓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이다. 새파란 고등학생 때부터 수능시험 상위 1%에 들어가 ‘인생역전’을 꿈꾸었던 상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숱한 각개전투는 셀 수 없는 패잔병만 남게 했다.


공무원시험 집착에 한숨짓지만

우철아, 그곳 어학연수 생활은 어떠냐? 어젯밤 뉴스에는 여전히 한기가 도는데 ‘이곳’ 대학 캠퍼스에서는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 모양이다. 대학을 졸업한 내가 마땅히 취업을 해 ‘이곳’에 없어야 하는데 밑창에 달라붙은 껌마냥 달라붙어 있다. 제멋대로 멋을 부린, 화장이 서툰 새내기의 얼굴에서 ‘일학년’ 우철이의 노란 머리가 떠오른다. 이들 중 누군가도 우리와 같이 ‘봉사활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그랬듯이 또다른 후배들이 그들을 향해 사회과학 소모임의 가치, 사회운동이 담당하는 민주적 가치를 들고 그들을 설복하려 나설 것이다.

출처 : 한겨례 독자칼럼 황상호/서울 광진구 모진동


//정은누나가 3월 첫째주 신문토론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Posted by 썩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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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님  2009.03.05 1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을 만날때 거의 대부분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만났고
    항상 누군가를 설복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나는.
    이 글이 너무도 와닿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이질감'을 만드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구나.
    '이질감'이 언젠간 '동질감'이 될 날을 기다리면서.